어떤 진술이 과학적인가를 논하는 것보다는 많은 경우에 그렇듯 과학적이지 않은 진술의 조건을 찾는 것이 더 수월할 것이다. 즉 충분조건을 찾기보단 필요조건을 찾는 쪽이 훨씬 쉬운 방식이다. 과학적 진술의 필요조건으로 쉽게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진술이 무언가에 대해서 예측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필요조건은 충분히 타당한가?

예측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정의하면 Y에 대해 알지 않고도 Y에 대해 아는 것이다. 그것이 결정론적이든(Y는 이렇다) 혹은 확률론적이든(Y의 확률 분포는 이렇다). 그렇다면 예측을 하지 않는 진술이란 어떤 것인가? 단순히 Y를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에 예측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알 수 없다고 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Y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을 예측하는 것이니까. 즉 다른 어떤 요인을 알더라도 Y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예측인 것이다. 예를 들어 브라운 운동과 같이 완전히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있다면 - 물론 그 무작위성도 많은 요인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 무작위성이긴 하지만, 그런 문제를 차치하면 - 그 시스템은 미래에도 다른 어떤 요인을 동원해서 예측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정확한 예측인 것이다.

예측이 없는 진술이란 보통 Y가 발생한 이후에 Y에 대해 말하는 종류의 진술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도 많은 경우에는 예측을 포함하고 있다. 동물이 어떤 습성을 가진다는 진술은 보통 그 동물이 앞으로도 그런 종류의 습성을 보일 것이라는 종류의 예측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정말로 예측이 없는 진술이란 앞으로는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없는 사건 Y에 대해서 말하는 진술이다.

이런 종류의 진술이 흔한가? 오히려 너무 쉽게 발견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특정한 사회적 사건에 대해서 평론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진술을 늘어놓는다. 많은, 특수한 역사적 사건들은 재현될 수 없고 우리는 그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에 대해서도 모두 알지 못하며 그 요인들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진술은 예측을 포함하지 않은 진술이다. 우리는 이런 진술들을 과학적 진술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럴 용의가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진술이 포함된다고 해서 과학의 설명 능력(물론 예측 능력도)이 확장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과학적 진술들의 집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에만 일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