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더미 모형이라고 마크 뷰캐넌이 자주 써먹는 모형이 있다. 복잡한 모형은 아니다. 평평한 평면 위 어느 한 곳에 모래를 하나 떨어뜨린다고 하자. 똑같은 곳에 모래가 또 떨어지면 그 모래는 쌓인다. 그런데 너무 높게 쌓으면 버티지 못하고 모래가 무너져서 다른 곳으로 떨어진다. 그 떨어진 다른 곳에도 모래가 아슬아슬하게 쌓여있었다면 무너질 것이고, 또 연쇄적으로 그렇게 무너질 수 있다.

모래더미 모형은 자기조직된 임계성(Self-organized Criticality)을 보이는 대표적인 사례다. 모래가 쌓이다 무너지는데 무너질 때 무너진 모래의 수의 분포를 보면 멱급수 분포/파레토 분포를 따른다. 각각의 모래는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그 떨어진 모래 때문에 발생하는 “산사태"의 규모는 너무나 다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산이 무너져내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모래 하나로 인해 발생할 일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뭐 이런 사례를 사회 현상에 곧바로 적용한다고 하면 당연히 무리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 현상에서도 이런 일들이 나타남을 보인 것이 수리 사회과학의 대표적인 성과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와츠가 말한(요즘 너무 자주 인용하는 것 같아서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불확정성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은 개별 행위자의 특성, 그러니까 모래 하나의 특성을 통해 거시적 사회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려는 강한 성향을 갖고 있다. 심지어는 사회를 어떤 특성을 가진 하나의 행위자로 취급하기도 한다. 아니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회 현상의 원인을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그러나 사회 현상은 행위자들의 특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발적 성향을 충분하게 갖고 있다. 행위자의 엄청난 차이가 아무 것도 아닌 차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차이가 행위자의 특성 때문인가? 단지 시스템이, 즉 사회라는 계가 그런 식으로 조직되어 있었고 그러한 약간의 차이를 가진 행위자의 존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래더미는 이미 무너질 준비를 한 채 모래 하나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런 비유 또한 계를 하나의 행위자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음은 인정한다.)

Sandpile mo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