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사회학과 인과적 설명
사회학하면 어쩐지 거대한 이론과 담론들로 대표되는 것 같다. 실제로 그게 주요한 사회학의 전통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와는 좀 다른 전통이 있는데 그게 분석사회학(Analytical Sociology)이다. 뭐 전통이라고 하기엔 좀 짧긴 한데 분석사회학 하는 양반들은 머튼을 분석사회학의 시조라고 끌어오는 편이라 머튼을 분석사회학적 패러다임의 창시자 정도로 인정해주면 전통이라고 부를만한 정도는 될 것이다.
분석사회학의 가장 큰 논점은 사회현상을 설명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설명하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은 상당히 거시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거시적인 요인, 예를 들어 실업률의 증가가 또다른 거시적인 요인, 예를 들어 폭동의 발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분석사회학의 입장은 이러한 거시적 요인들, 혹은 각종 요인들 사이의 인과관계 안에 있는 톱니바퀴들을 분석해냈을 때 사회학적 설명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실업률의 증가가 어떻게 폭동을 발생시키는가? 실업률의 증가가 개별 행위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그 행위자들이 그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기에 폭동을 발생시키는가? 이런 인과적 톱니바퀴들을 분석해내고 설명해냈을 때에야 현상을 설명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거시적 현상이 미시적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남지만(당연히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요인들 사이를 구성하는 인과적 톱니바퀴들, 즉 인과적 메커니즘을 밝혀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인과적 메커니즘의 조건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인과적이어야 한다는 것. 이는 설명이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인과적인 경우에만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검증 가능해야 한다는 것. 검증 불가능한 것은 논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이러한 메커니즘들을 조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Composability). 메커니즘에 의한 설명은 요인들 사이의 인과적 메커니즘의 연쇄로 현상을 설명하기에 따라서 이러한 메커니즘들은 조립 가능해야 한다.
설명이 조립가능해야 한다는 것은 분석사회학의 메커니즘적 설명의 주요한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분석사회학은 일반적인 거대 담론보다는 중범위이론(Middle range theory)을 선호한다. 실은 중범위이론이 메커니즘적 설명의 한 이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거대 담론의 문제는 그 이론에 의한 설명들이 조합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하버마스와 부르디외의 이론들 중 이것저것을 가져다 쉽게 조립할 수 있는가? 하버마스와 부르디외의 개별 이론들은 하버마스와 부르디외의 나머지 이론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따라서 그 이론들을 가져다 쓴다는 것은 그런 이론적 배경들과 가정들을 가져온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이론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기 쉽다. 흔히 유의해야 할 문제로 거론되는 문제이고, 이 문제를 피하려면 결국 가져다 쓰려는 이론을 설계한 이론가의 전반적인 이론적 구조를 충분히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메커니즘적 설명에서는 그보다 훨씬 간단한 설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간단한 설명을 조합하는 것으로 현상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분석사회학적 입장에 가장 잘 걸맞는 것 중 하나가 유디 펄의 인과 그래프 모형이다. (수리적 모형과 행위자 기반 모형은 일단 제외하고…) 인과 그래프 모형에서 앞문 조건(Front-door criterion)이 메커니즘에 의한 설명과 거의 일치한다. 앞문 조건이란 간단하게 요약하면 두 요인 사이에 존재하는 요인들의 구조를 통해서 두 요인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요인 사이에 있는 요인들을 설명해야 는한다는 것이 목표인 메커니즘적 설명과 통할 수밖에 없다.
보면 분석사회학이라는 것이 양적 방법론, 계산적 방법론, 수리적 방법론을 쓰던 사람들의 취향에 딱 맞춰져 있다. 분석사회학이 질적 방법이나 기존의 이론들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질적 방법이나 기존의 이론가들이 대체로 싫어할 것이라는 게 아마 더 문제일 듯. “진짜” 질적 방법을 쓰는 사람들 중에 인과관계라거나 인과적 설명에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반감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