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ts가 Turco & Zuckerman이 쓴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쓴 Response to Turco and Zuckerman’s “Versthen for Sociology"라는 글에서 나온 예시 중에 이런 게 있음.

비틀즈가 왜 성공했을까? 성공한 앨범이나 밴드를 예측하는 예측 모형을 만들 수 있음. 그런데 그런 모델로는 비틀즈와 같은 특수한 사례를 예측하기는 힘들 것임. (실제로 히트송 예측 같은 과제들이 있긴 한데 결과가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알고 있음. 비틀즈 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 대해서도 예측을 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름.) 그리고 비틀즈의 성공을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밴드들의 성공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을 해줄 가능성도 낮음. 뭐 그러니까 밴드 중에 스타 멤버가 있는가 없는가를 가지고 성공을 예측할 수 있다거나 하는 이런 종류의 설명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그렇다고 그 모델에 문제가 있느냐? 없음. 모델은 데이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

반면에 비틀즈의 성공에 대한 다채로운 설명은 아주 흔함. 리버풀의 스키플 그룹이라는 음악적 배경, 스타 멤버 한 명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 비틀즈 활동 당시에 출현한 베이비부머 세대, 비틀즈 멤버들의 외모, 아니면 뭐 영국 출신의 4인조에서 정신적 고양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든지. 등등등. 건조한 통계 모델에 비해 이 얼마나 찬란하고 화려한 설명인가? 거기다 당연히 비틀즈의 성공은 비틀즈 멤버들의 구성과 비틀즈에게 주어진 기회, 그리고 비틀즈가 그 기회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가, 그리고 시대적 상황 등등등에 의한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것으로 비틀즈의 성공을 설명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나?

그러나 문제는 이런 설명은 전혀 인과적이지 않다는 것이. 왜? 어떤 그런 사회문화적 그리고 밴드의 특성이라는 요인 X가 밴드의 성공이라는 결과 Y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면 X가 아니었다면 Y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있어야 함. 그런데 비틀즈의 성공 같은 사건, 특히 비틀즈의 성공과 같은 아주 고유한 사건에 대해서 이런 역사실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가? 없음. 이렇게 근본적으로 역사실적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없는 설명은 근거 없거나 부적격한 것으로 간주해야 함.

그런데 이런 설명은 너무 많지 않나? 이런 종류의 설명이 사회’과학’ 학계에까지 퍼져있다는 것이 와츠의 문제 의식이었음. 그러면 왜 이런 종류의 설명이 이렇게 흔한가? 이런 역사실적 질문에 대한 답을 머리 속에서 상상하는 것으로 때우기 때문임. 그 당시에 베이비부머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존 레논이나 폴 매카트니가 없었다면? 내 생각엔 비틀즈가 성공하긴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게 비틀즈의 성공 원인이다! 가 호사가들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임. 당연히 그런 설명을 만들어낸 기관(머리 속)과 그 설명을 역사실적 측면에서 검증하는 기관(머리 속)이 동일하니까 설명이 그럴 듯 하고 타당한 것처럼 (스스로에게는) 보임. 물론 실제로는 그럴 리가 없음.

이런 종류의 설명을 폐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앞서의 모델 같은 재미 없는 설명들만이 남게 될 것임. 더군다나 사람들이 떠들기 좋아하는 재미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설명을 할 수 없다고 또한 인정해야 할 것. 비틀즈가 왜 성공했나? 왜 엔론이 파산했나? 금융위기는 대체 무엇 때문에 발생했나? 그런 건 대답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음. 그렇지만 그런 재미 없는 인정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겠다고, 혹은 설명했다고 자처하면서 부적격한 (자칭)“설명"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일일 것임.